이라 목사님께.
모스크바 공항에 내려서 처음 뵈었을 때 저는 당황했습니다. 저를 맞아줄 분은 한국인인 줄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목사님 부부는 선교대회로 2주간 출타 중이시고, 한국말에 익숙지 않은 목사님이 저를 맞아 주리라곤 꿈에도 몰랐습니다. 통역 강의는 처음이기에 저는 마음속에 먹구름이 끼는 듯했습니다. 과연 일주일 동안 신학생들에게 준비한 내용을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살포시 놓인 쌀자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저에겐 좀 낯설고 무서운 이미지의 나라입니다. 붉은색 깃발의 공산주의와 막강한 군사력의 나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대한민국의 38선을 긋게 한 나라로도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 저는 처음으로 왔습니다. 한국 사람이 있었다면 저의 두려움은 좀 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순수함과 열정이 언어보다 더 중요한 소통 수단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지요. 고려인으로서 러시아어로만 의사소통을 하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말을 배우셨는데도, 한국말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말을 하실 때는 약간 힘들어하시지만 듣는 것은 다르시더군요. 제가 생각했던 통역 걱정은 저의 작은 마음일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모스크바 은혜신학교! 러시아 전역과 주변 공화국들에서 온 70명의 신학생들! 그리고 학생들을 섬기는 직원들! 새삼 놀랐습니다. 러시아에도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며 기쁨으로 찬양하고 열심히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 신기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몸살이 나서 육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심적으로는 기쁨으로 가득 찬 한 주였습니다. 또한 파이디온 선교회의 CEE 1-2 ‘승리하는 삶’ 과정의 진가를 새롭게 알게 된 한 주간이기도 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신앙 전반을 다룰 수 있었고, 서로 많이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함께 은혜의 도가니 속에 있게 했지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 웃고, 울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처음엔 혹시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고 대충 아무렇게나 전달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웃어야 할 부분에서 정확히 웃고, 진지할 때 숨소리를 줄이며 듣고, 감탄할 때 분명히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러시아 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저녁 집회 때 함께 찬양하고 기도할 때, 러시아 사람들을 앞에 두고 제가 한국말로 찬양 인도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어를 초월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일주일 동안 저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시베리아나 사할린에서 5-7일 내내 기차를 타고 온다는 말을 듣고 제 입이 딱 벌어졌었지요. 우즈베키스탄이나 그 밖의 이슬람 지역에서 온 분들은 다시 핍박을 받고 죽음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각오했다는 말은 제 맘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매 휴식 시간마다 찾아와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했던 모든 학생들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모든 사랑을 쏟아부어주고 싶은 맘이 들게 했습니다. 자신이 맡을 지역의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겠다는 학생들의 약속은 제 맘에 감사가 넘치게 했습니다.
목사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확신하며 기도했습니다. 모스크바 은혜신학교에 있는 학생들로 인해 이 광활한 땅에 복음의 물결이 퍼져나갈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귀한 분들로 인해 수많은 어린이들이 주 앞에 돌아오는 역사를 봅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그렇게 귀한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주지 못했겠지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통역하실 때 하나님을 부르는 그 단어는 지금도 제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하나님을 순전하게 부르는 그 말이 제 맘을 간절하게 만듭니다.
목사님! 모든 강의를 마쳤을 때, 옷 색깔 배치로 하트를 만들고 한국어 노래로 저를 축복해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진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우리 주님이 늘 함께하시고 복 주시길 이곳에서도 기도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기도하며….